유목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말 위에서 살며 고기와 유제품만 먹는 거친 전사들. 그런데 하자르 제국의 음식 문화를 찾아보니, 그 이미지와 상당히 달랐습니다. 하자르인들의 주식은 놀랍게도 쌀과 생선이었습니다. 거기에 보리, 밀, 멜론, 오이까지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출발한 유목민이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식문화를 갖게 되었을까요? 하자르 제국의 위치와 역사를 따라가 보니 그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제목에서 보셨을 것 처럼 유목민이 어떻게 생선을 먹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점이 생깁니다. 어떻게 그들은 그렇게 먹을 수 있는가? 그 환경부터 시작해서 각 도시별 식문화의 차이까지 설명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식은 쌀과 생선 — 예상을 깨는 유목민의 식탁
하자르 음식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쌀과 생선이 주식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자르 제국의 수도 이틸(Itil)은 볼가강 하구, 카스피해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볼가강은 유럽에서 가장 긴 강으로, 풍부한 어류 자원을 제공했습니다. 철갑상어, 잉어, 농어 등 다양한 민물고기가 잡혔고, 카스피해에서도 해산물이 공급되었습니다.
쌀이 주식이었다는 점은 더 흥미롭습니다. 쌀은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주로 재배되는 작물인데, 하자르인들이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쌀 재배 기술을 도입했거나 중앙아시아와의 교역을 통해 쌀을 수입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볼가강 하구의 습지 환경이 벼농사에 적합했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유목민이 쌀을?” 하고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하자르인들은 7세기 중반 이후 점차 정착 생활로 전환한 반유목민이었습니다. 도시를 건설하고 농경을 시작한 시점부터 식문화도 변화한 것이죠. 유목에서 정착으로의 전환이 식탁 위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셈입니다.
농경과 목축의 공존 — 초원과 도시 사이의 식문화
하자르 제국의 음식 문화를 이해하려면, 이 제국이 순수한 유목 사회가 아니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하자르인들은 원래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온 투르크계 유목민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다른 유목민들과 마찬가지로 목축이 경제의 중심이었습니다. 말, 양, 소, 염소를 키웠고, 유제품(요구르트, 치즈, 마유주 등)과 고기가 주된 식량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7세기 이후 하자르 제국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이른바 “팍스 하자리카(Pax Khazarica)”의 시대가 열립니다. 초원에 평화가 찾아오면서 관개 농업이 가능해졌고,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하자르인들은 “토지를 경작하고 정원과 포도밭을 가꾸는 데 더 관심을 보이는” 정착적 성향의 유목민이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쌀 외에도 보리, 밀, 기장 같은 곡물이 재배되었습니다. 멜론, 오이, 삼(대마) 같은 작물도 하자르 영토에서 수확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포도밭이 있었다는 것은 와인 생산도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결국 하자르의 식탁에는 유목 전통의 고기와 유제품, 농경에서 얻은 곡물과 채소, 그리고 강과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 모두 올라왔을 것입니다. 하나의 제국 안에서 초원의 음식과 도시의 음식이 공존한 것이죠.
실크로드의 교차로 — 교역이 만든 다양한 식재료
하자르 음식 문화가 유난히 다양했던 결정적 이유가 있습니다. 하자르 제국이 실크로드의 핵심 교차로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자르 제국은 동유럽과 서남아시아를 잇는 주요 교역로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 아랍-페르시아 세계, 그리고 먼 동쪽의 중국까지 연결되는 무역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 교역로를 통해 비단, 향신료, 모피, 귀금속이 오갔는데, 식재료와 조리법도 함께 이동했을 것입니다.
페르시아와의 교류는 쌀 문화와 향신료 사용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비잔티움과의 접촉은 지중해식 식문화의 요소를 전달했을 것이고, 슬라브 민족과의 교류는 곡물과 발효 식품 문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하자르 제국은 다민족, 다종교 사회였습니다. 투르크계 하자르인 외에도 슬라브인, 알란인, 불가르인,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도가 함께 살았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도 교류되고 융합됩니다.
수도 이틸에는 각국의 상인들이 모여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국제 무역 도시에서는 상인들을 위한 다양한 음식이 제공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하자르 식문화의 다양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종교가 식탁을 바꾸다 — 유대교 개종과 음식 규율
하자르 음식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있습니다. 8세기경 하자르 지배층이 유대교로 개종한 사건입니다.
유대교에는 카슈루트(Kashrut)라 불리는 엄격한 음식 규율이 있습니다. 돼지고기와 조개류를 금지하고,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않으며, 동물을 도축할 때 특정한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하자르 지배층이 유대교를 받아들였다면, 적어도 왕궁과 귀족층의 식탁에는 이 규율이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하자르 제국 전체가 유대교를 믿은 것은 아닙니다. 일반 백성 중에는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전통 텡그리교 신자가 모두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자르 제국 내에서는 유대교식 식사법, 이슬람의 할랄 규율, 기독교의 금식 전통, 유목민의 전통적 식습관이 모두 공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하나의 제국 안에 이렇게 다양한 식문화 규율이 공존했다니” 하고 놀랐습니다. 현대 다문화 사회에서 할랄 식당과 코셔 식당이 나란히 있는 풍경이, 이미 1,200년 전 하자르 제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고고학이 보여주는 단서 — 뼛조각과 토기에서 읽는 식생활
문헌 기록만으로는 하자르의 음식 문화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이 중요한 보충 자료를 제공합니다.
살토보-마야키 문화(Saltovo-Mayaki culture)로 알려진 하자르 시대의 고고학적 유적에서는 동물 뼈, 곡물 잔존물, 토기, 조리 도구 등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유물들은 하자르인들의 실제 식생활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발굴된 동물 뼈 분석을 통해 양, 소, 말, 돼지 등 다양한 가축이 사육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돼지 뼈의 존재입니다. 유대교에서 돼지고기는 금기인데 돼지 뼈가 발견된다는 것은, 유대교 식사법이 제국 전체에 강제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 주민들은 자신의 종교와 전통에 따라 자유롭게 식사했다는 증거이죠.
토기의 형태와 사용 흔적에서도 조리법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큰 솥 형태의 토기는 스튜나 죽 같은 음식을 끓여 먹었음을 시사하고, 납작한 토기판은 빵이나 전병을 구웠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곡물 잔존물 분석에서는 보리와 기장이 가장 흔하게 발견되며, 이는 이 곡물들이 일상 식사의 기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포도씨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어 와인 생산의 증거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정리하며
하자르 제국의 음식 문화는 단순한 유목민의 식탁이 아니었습니다. 쌀과 생선이 주식이었고, 보리, 밀, 멜론, 오이까지 재배했으며, 실크로드 교역을 통해 다양한 식재료가 유입되었습니다.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텡그리교의 서로 다른 음식 규율이 하나의 제국 안에서 공존했다는 점은 하자르 사회의 다원적 성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하자르의 식문화는 유목과 정착, 초원과 도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태어난 독특한 융합의 산물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하자르인들의 주식이 정말 쌀이었나요?
네, 아랍 사료에 따르면 하자르인들의 주식은 쌀과 생선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도 이틸이 볼가강 하구에 위치해 풍부한 수산 자원을 이용할 수 있었고, 쌀은 중앙아시아와의 교류를 통해 도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Q2. 유목민인데 어떻게 농경을 했나요?
하자르인들은 7세기 이후 점차 반유목, 반정착 사회로 전환했습니다. 팍스 하자리카 시기에 초원에 평화가 찾아오면서 관개 농업과 도시 건설이 가능해졌고, 곡물 재배와 정원 가꾸기가 활발해졌습니다.
Q3. 하자르인들이 술을 마셨나요?
포도밭이 있었다는 기록과 포도씨가 발굴된 사례가 있어, 와인 생산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목 전통에서는 마유주(쿠미스)도 마셨을 것이며, 다종교 사회였으므로 음주에 대한 태도는 종교에 따라 달랐을 것입니다.
Q4. 유대교 개종 이후 식문화가 크게 변했나요?
지배층의 식탁에는 카슈루트(유대교 음식 규율)가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제국 전체에 강제된 것은 아닙니다. 고고학적 증거(돼지 뼈 발견 등)는 일반 주민들이 각자의 전통에 따라 자유롭게 식사했음을 보여줍니다.
Q5. 하자르 음식 문화의 흔적이 현대에 남아있나요?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기는 어렵지만, 볼가강 유역과 카프카스 지역의 전통 음식 중 일부에 하자르 시대의 영향이 간접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생선 요리와 곡물 죽 문화는 이 지역에서 오래된 전통입니다.
Q1. 하자르인들의 주식이 정말 쌀이었나요?
네, 아랍 사료에 따르면 하자르인들의 주식은 쌀과 생선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도 이틸이 볼가강 하구에 위치해 풍부한 수산 자원을 이용할 수 있었고, 쌀은 중앙아시아와의 교류를 통해 도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Q2. 유목민인데 어떻게 농경을 했나요?
하자르인들은 7세기 이후 점차 반유목, 반정착 사회로 전환했습니다. 팍스 하자리카 시기에 초원에 평화가 찾아오면서 관개 농업과 도시 건설이 가능해졌고, 곡물 재배와 정원 가꾸기가 활발해졌습니다.
Q3. 하자르인들이 술을 마셨나요?
포도밭이 있었다는 기록과 포도씨가 발굴된 사례가 있어, 와인 생산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목 전통에서는 마유주(쿠미스)도 마셨을 것이며, 다종교 사회였으므로 음주에 대한 태도는 종교에 따라 달랐을 것입니다.
Q4. 유대교 개종 이후 식문화가 크게 변했나요?
지배층의 식탁에는 카슈루트(유대교 음식 규율)가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제국 전체에 강제된 것은 아닙니다. 고고학적 증거(돼지 뼈 발견 등)는 일반 주민들이 각자의 전통에 따라 자유롭게 식사했음을 보여줍니다.
Q5. 하자르 음식 문화의 흔적이 현대에 남아있나요?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기는 어렵지만, 볼가강 유역과 카프카스 지역의 전통 음식 중 일부에 하자르 시대의 영향이 간접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생선 요리와 곡물 죽 문화는 이 지역에서 오래된 전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