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라시아의 강대국 하자르 칸국, 실크로드 무역의 중심이자 비잔틴과 아랍 사이의 완충 지대였던 이 나라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요? 전쟁과 외교 이야기 뒤에 숨겨진 하자르인의 일상 그들이 입었던 옷, 사용한 장신구, 먹었던 음식, 그리고 유목과 정주 사이를 오가던 독특한 생활 방식을 살펴봅니다. 저는 옷 입는걸 좋아했었는데 , 그 시절은 어떤 용도로 옷을 입었는지도 정말 궁금했답니다. 옷은 용도와 목적에 따라 정말 확연하게 차이가 많이 나는데요 , 이번 글에서는 그 의복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단추 달린 옷을 입은 유목민: 하자르의 의복 문화
하자르인의 의복은 투르크계 유목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된 다양한 문화의 영향이 혼합된 독특한 형태였습니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하자르인들은 단추로 여미는 옷을 기본으로 착용했습니다. 이것은 핀이나 브로치(피불라)로 옷을 고정했던 슬라브인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입니다. 단추형 의복은 말 위에서 활동하기 편리한 구조로, 유목 생활에 최적화된 실용적 선택이었습니다.
카프탄(긴 외투) 형태의 겉옷은 하자르 복식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카프탄은 중앙아시아 투르크 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허리를 가죽 벨트로 조이고 그 위에 다양한 금속 장식을 달았습니다. 실제로 하자르 시대 무덤에서 발굴되는 유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교하게 장식된 허리 벨트입니다. 이 벨트는 단순한 실용품이 아니라 착용자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물이었습니다.
머리에는 천을 감아 만든 두건 형태의 모자를 썼으며, 여기에 귀걸이를 함께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펠트로 만든 부츠도 발견되었는데, 유목 생활에서의 실용성과 보온성을 동시에 갖춘 신발이었습니다.
장신구와 부적: 태양과 동물을 숭배한 사람들
하자르인의 장신구 문화는 그들의 종교적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인장 반지, 유리·석재 구슬 목걸이가 널리 사용되었지만, 흥미롭게도 슬라브인들에게 흔했던 토르크(목걸이형 금속 장식)나 팔찌는 하자르 유물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부적 문화입니다. 하자르인들은 태양 숭배, 풍요 기원, 동물 세계와 관련된 다양한 부적을 착용했습니다. 이 부적들은 투르크계 유목민의 텡그리즘(천신 숭배) 전통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태양을 형상화한 원형 장식, 말과 사슴 같은 동물 모티프의 펜던트가 대표적입니다.
여성 무덤에서는 장신구 외에도 거울, 유리·도자기 그릇, 향수병 등이 발견되어, 하자르 여성들이 상당한 수준의 미적 감각과 생활 수준을 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목에서 정주로: 변화하는 생활 방식
하자르 생활문화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유목 생활에서 점차 정주 생활로 전환되었다는 점입니다.
초기: 말 위의 삶
하자르 칸국 초기의 주민들은 전형적인 유목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가축(특히 말, 양, 염소)을 이끌고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펠트 천막(유르트)에서 생활했습니다. 말은 교통수단이자 전투 도구였을 뿐 아니라 식량 자원이기도 했습니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하자르 시대 유적에서 많은 수의 어린 말 뼈가 발견되는데, 이는 말고기를 식용했음을 보여줍니다.

후기: 도시와 농업의 등장
8세기 이후, 특히 살토보-마야키 문화 시기에 접어들면서 하자르의 생활 방식은 크게 변화합니다. 유목에서 반(半)정주형 농목 혼합 경제로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돈강, 도네츠강 유역에 고정된 마을과 요새가 건설되었고, 밀과 보리 같은 곡물 재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도 이틸(아틸)은 그 변화의 정점이었습니다.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이 도시는 국제 무역 허브로 성장했으며,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코스모폴리탄적 공간이었습니다. 10세기 페르시아 지리서 후두드 알알람은 하자르를 가리켜 “매우 쾌적하고 풍요로운 나라”라고 묘사했습니다.
식탁 위의 하자르: 무엇을 먹고 마셨을까
하자르인의 식생활은 유목과 정주 생활의 이중성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유목 생활에서는 말젖으로 만든 발효유(쿠미스), 양고기, 말고기가 주식이었습니다. 건조육과 발효 유제품은 이동 생활에 적합한 보존 식품이었습니다. 정주 생활이 확대되면서는 밀, 보리 등의 곡물과 강에서 잡은 물고기가 식단에 추가되었습니다.
특히 이틸 같은 무역 도시에서는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향신료, 과일, 포도주 등 다양한 수입 식품도 접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랍 상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하자르인들은 모피와 의류를 아랍에 수출하고, 중국으로부터는 거울을 수입했습니다.
다문화 사회의 일상: 관용의 제국
하자르 생활문화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종교적·민족적 다양성입니다. 지배층이 유대교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자르 칸국에는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텡그리즘 신봉자, 유대교도가 함께 살았습니다.

수도 이틸의 최고 재판소는 7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유대교 판관 2명, 이슬람교 판관 2명, 기독교 판관 2명, 그리고 이교도(텡그리즘) 판관 1명이 배치되었습니다. 한 종교가 사법부를 독점하지 못하게 한 이 제도는 중세 시대에 매우 이례적인 관용 정책이었습니다.
이러한 다문화적 환경은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자르의 시장에서는 투르크어, 히브리어, 아랍어, 그리스어 등 다양한 언어가 오갔고, 각 민족의 의복과 음식이 자연스럽게 공존했습니다.
정리
하자르인의 의복과 생활문화는 단순한 유목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투르크 유목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비잔틴, 페르시아, 아랍, 중국의 문화를 흡수한 독특한 혼합 문화였습니다. 단추형 의복과 장식 벨트, 태양 숭배의 부적, 유목에서 정주로의 전환, 그리고 종교적 관용 — 이 모든 요소가 하자르를 중세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개방적인 문명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하자르인의 의복은 주변 민족과 어떻게 달랐나요?
하자르인은 단추로 여미는 카프탄형 의복을 착용했는데, 이는 핀(피불라)으로 고정하는 슬라브식 의복과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또한 천으로 감싼 두건형 모자에 귀걸이를 조합하는 것이 특징적이었습니다. 장신구도 토르크나 팔찌보다는 인장 반지, 유리 구슬, 태양 모티프 부적을 선호하여 슬라브 문화권과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Q2. 하자르인들은 유목민이었나요, 정주민이었나요?
둘 다입니다. 초기에는 전형적인 유목 생활을 했지만, 8세기 이후 점차 반정주형 농목 혼합 경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살토보-마야키 고고학 문화로 잘 기록되어 있으며, 도시 건설과 농업 도입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완전한 정주화는 아니었고, 유목과 정주가 공존하는 혼합적 생활 방식이 하자르의 특징이었습니다.
Q3. 하자르 시대의 유물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하자르 시대 유물은 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살토보-마야키 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벨트 장식, 도자기, 무기, 장신구 등이 대표적이며, 모스크바 국립역사박물관에서 하자르 관련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인근의 베르흐니 살토프 유적은 하자르 고고학의 가장 중요한 현장 중 하나입니다.
Q1. 하자르인의 의복은 주변 민족과 어떻게 달랐나요?
하자르인은 단추로 여미는 카프탄형 의복을 착용했는데, 이는 핀(피불라)으로 고정하는 슬라브식 의복과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또한 천으로 감싼 두건형 모자에 귀걸이를 조합하는 것이 특징적이었습니다. 장신구도 토르크나 팔찌보다는 인장 반지, 유리 구슬, 태양 모티프 부적을 선호하여 슬라브 문화권과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Q2. 하자르인들은 유목민이었나요, 정주민이었나요?
둘 다입니다. 초기에는 전형적인 유목 생활을 했지만, 8세기 이후 점차 반정주형 농목 혼합 경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살토보-마야키 고고학 문화로 잘 기록되어 있으며, 도시 건설과 농업 도입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완전한 정주화는 아니었고, 유목과 정주가 공존하는 혼합적 생활 방식이 하자르의 특징이었습니다.
Q3. 하자르 시대의 유물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하자르 시대 유물은 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살토보-마야키 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벨트 장식, 도자기, 무기, 장신구 등이 대표적이며, 모스크바 국립역사박물관에서 하자르 관련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인근의 베르흐니 살토프 유적은 하자르 고고학의 가장 중요한 현장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