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부터 10세기까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를 지배한 하자르 칸국은, 이슬람 팽창을 막아낸 방패이자 유라시아 교역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런 강국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역사무대에서 사라졌는지는 단순한 전쟁사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자르의 멸망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제국의 흥망이 얼마나 복잡한 요인들의 합작인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자르 제국이 어떤나라였는지 그리고 내부에서 시작된 균열이 한 제국의 멸망까지 어떠한 점이 영향을 미쳤는지 재미있게 풀어냈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 — 하자르는 어떤 나라였나
하자르를 무너뜨린 세력을 이해하려면, 우선 하자르가 얼마나 강한 나라였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서돌궐이 당나라에 의해 소멸한 657년을 전후해, 돌궐 왕족 아사나 씨족의 일파가 흑해와 캅카스 북쪽에 독립된 카간국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하자르 칸국입니다. 이들의 영토는 동서로 우크라이나 초원부터 우랄 강까지, 남북으로 볼가 강 중류에서 크림반도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하자르의 전성기에 가장 인상적인 업적은 아랍 이슬람 세력의 북진을 막아낸 것입니다. 7세기 중반 이후 약 1세기에 걸쳐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와 캅카스 일대에서 격렬한 전쟁을 치렀고, 결국 아랍 군대가 캅카스 산맥 이북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8세기 중반 우마이야의 장수 마르완이 하자르 땅 깊숙이 쳐들어왔다가 결국 수비대 하나 남기지 않고 철군한 사건은, 하자르가 얼마나 버거운 상대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하자르가 없었다면 동유럽과 러시아 남부의 이슬람화가 수백 년은 더 빨라졌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8세기 중반에는 지배층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독특한 선택을 합니다. 이슬람도 기독교도 아닌 유대교를 택한 것은, 아랍과 비잔티움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첫 번째 균열 — 내부에서 시작된 쇠퇴
하자르의 멸망은 어느 날 갑자기 외부의 적이 나타나 일격에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830년대부터 이미 균열이 시작됩니다.
830년대에 마자르 집단이 폰토스 초원 일대로 이주해 들어와 하자르의 서쪽 영토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과의 긴장도 고조되었고, 중심지에서는 기근까지 발생했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군 사령관 불란이 카간을 대신해 실권을 장악합니다. 이것이 하자르 특유의 이중 왕 체제의 시작입니다. 명목상의 카간과 실질적인 통치자 베그(대장군)로 권력이 분리되는 구조는,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한 시기에 오히려 결정권을 분산시키는 취약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9세기 초에는 하자르의 지배하에 있던 마자르족이 독립을 선언하며 이탈했습니다. 마자르족은 이후 서쪽으로 이동해 결국 현재의 헝가리 지역에 정착하는 민족입니다. 산하 세력의 이탈은 하자르의 군사력과 경제적 기반 모두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결정타를 날린 세력 — 키예프 루스와 스뱌토슬라프
하자르를 실질적으로 무너뜨린 주역은 키예프 루스, 정확히는 그 대공 스뱌토슬라프 1세입니다.
9세기 말부터 바이킹 계통의 루스인들이 드니프로 강과 볼가 강을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하자르가 통제하던 하천 교역로를 이용하는 상인이자 약탈자였지만, 점점 하자르의 교역망 자체를 잠식해 들어갔습니다. 9세기 말 루스인들이 흑해와 북유럽을 잇는 하천 교역로를 빼앗으면서 하자르의 경제적 기반은 급속히 무너졌습니다.
결정적인 군사 행동은 스뱌토슬라프 1세 치세에 이루어집니다. 965년 그는 볼가-불가리아 칸국을 복속시켜 볼가 강 일대 무역로를 장악한 뒤, 하자르를 향해 진격합니다. 965년부터 시작된 하자르 원정에서 루스 군대는 하자르의 주요 도시들을 차례로 함락시켰고, 969년에는 마침내 수도 이틸(아틸)이 무너졌습니다.
수도가 함락된 이후 하자르 칸국은 소국으로 전락했습니다. 한때 흑해와 카스피해를 잇는 교역망의 주인이었던 나라가, 자신의 수도조차 지키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마지막 숨통을 끊은 세력들 — 페체네그와 쿠만
스뱌토슬라프의 공격이 치명상이었다면, 이후 하자르의 잔존 세력을 최종적으로 흡수한 것은 페체네그와 쿠만(킵차크)이었습니다.
페체네그는 원래 중앙아시아 시르다리야 강 유역에 살던 튀르크계 유목민이었습니다. 한때 889년 하자르에게 패배해 서쪽으로 밀려난 적도 있었지만, 하자르가 쇠퇴하자 세력을 되찾아 흑해 북안의 넓은 스텝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이들이 하자르 칸국이 남긴 영토의 상당 부분을 흡수했습니다.
이후 동방에서 쿠만(킵차크)이 몰려오면서 하자르의 잔존 세력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하자르 지배층의 일부는 셀주크와 함께 중앙아시아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셀주크 제국의 지배층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왜 하자르는 이렇게 쉽게 무너졌을까
군사적 패배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하자르가 아랍 이슬람 세력과 1세기 가까이 싸워 막아냈던 나라임을 생각하면, 루스의 공격에 이렇게 급속히 무너진 것은 다른 이유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가장 큰 원인은 교역로의 상실입니다. 하자르 칸국의 부는 군사력이 아니라 교역로 통제에서 나왔습니다. 볼가 강과 드니프로 강을 따라 북방의 모피, 노예와 남방의 비단, 향신료가 오가는 중계 무역이 국력의 핵심이었습니다. 루스인들이 이 교역로를 잠식하고 직접 비잔티움, 아랍과 거래하기 시작하자, 하자르는 군사력을 유지할 경제적 기반 자체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중 왕 체제로 인한 내부 권력 분열, 마자르 등 산하 세력의 이탈로 인한 인력 손실, 거기에 교역로 상실까지 겹치면서 하자르는 스뱌토슬라프의 군대를 맞았을 때 이미 충분히 약해져 있었습니다.
정리하며
하자르를 무너뜨린 것은 단 하나의 세력이 아니었습니다. 내부 권력 분열과 마자르족의 이탈로 균열이 시작되었고, 루스인들의 교역로 잠식이 경제적 기반을 갉아먹었으며, 키예프 루스의 스뱌토슬라프 1세가 965~969년에 수도를 함락시키며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그 뒤를 이어 페체네그와 쿠만이 빈 영토를 채우며 하자르의 흔적을 지웠습니다. 한때 아랍 제국의 북진을 혼자 막아냈던 강국의 몰락은, 군사적 패배가 아니라 교역망 붕괴와 내부 균열이 먼저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FAQ
Q1. 하자르를 무너뜨린 핵심 세력은 누구인가요?
A. 결정적인 군사 행동을 가한 것은 키예프 루스의 대공 스뱌토슬라프 1세입니다. 그는 965년부터 하자르의 주요 도시들을 공략했고, 969년 수도 이틸을 함락시켰습니다. 다만 그 이전부터 이미 루스인들이 하자르의 교역로를 잠식하며 경제적 기반을 흔들고 있었고, 내부 권력 분열과 마자르족의 이탈도 하자르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Q2. 하자르 멸망 이후 그 영토는 어떻게 되었나요?
A. 수도 이틸 함락 이후 하자르의 영토는 키예프 루스, 페체네그, 쿠만(킵차크) 등에게 나뉘어 흡수되었습니다. 하자르 지배층의 일부는 셀주크와 함께 중앙아시아로 이동해 셀주크 제국의 지배층이 되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Q3. 하자르가 아랍 제국은 막았는데 왜 루스에게는 무너진 건가요?
A. 아랍과의 전쟁은 군사적 대결이었지만, 루스는 하자르의 교역로 자체를 대체했습니다. 하자르의 국력은 볼가·드니프로 강 중계 무역에서 나왔는데, 루스인들이 직접 비잔티움과 거래하면서 하자르를 경유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경제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군사 원정을 맞았으니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Q4. 하자르의 유대교 개종은 멸망과 관련이 있나요?
A.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슬람 세력이 하자르 일대에 영향력을 넓혀가면서 유대교를 믿는 하자르와의 관계가 냉각되고 교역 네트워크가 재편된 것은 사실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하자르의 이슬람화가 진행되자 비잔티움이 상업적으로 고립될 것을 우려해 루스와의 협력으로 전환한 것도 하자르 고립에 한몫했습니다.
Q5. 하자르 이후 이 지역에서 유사한 역할을 한 나라가 있나요?
A. 하자르가 차지했던 캅카스와 흑해·카스피해 사이의 완충 역할은 이후 어느 한 세력이 온전히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페체네그, 쿠만이 스텝 지역을 지배했고, 13세기에는 몽골의 킵차크 칸국이 이 일대를 장악했습니다. 하자르처럼 이슬람·기독교 세계 사이에서 독립적인 완충 역할을 한 세력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Q1. 하자르를 무너뜨린 핵심 세력은 누구인가요?
A. 결정적인 군사 행동을 가한 것은 키예프 루스의 대공 스뱌토슬라프 1세입니다. 그는 965년부터 하자르의 주요 도시들을 공략했고, 969년 수도 이틸을 함락시켰습니다. 다만 그 이전부터 이미 루스인들이 하자르의 교역로를 잠식하며 경제적 기반을 흔들고 있었고, 내부 권력 분열과 마자르족의 이탈도 하자르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Q2. 하자르 멸망 이후 그 영토는 어떻게 되었나요?
A. 수도 이틸 함락 이후 하자르의 영토는 키예프 루스, 페체네그, 쿠만(킵차크) 등에게 나뉘어 흡수되었습니다. 하자르 지배층의 일부는 셀주크와 함께 중앙아시아로 이동해 셀주크 제국의 지배층이 되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Q3. 하자르가 아랍 제국은 막았는데 왜 루스에게는 무너진 건가요?
A. 아랍과의 전쟁은 군사적 대결이었지만, 루스는 하자르의 교역로 자체를 대체했습니다. 하자르의 국력은 볼가·드니프로 강 중계 무역에서 나왔는데, 루스인들이 직접 비잔티움과 거래하면서 하자르를 경유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경제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군사 원정을 맞았으니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Q4. 하자르의 유대교 개종은 멸망과 관련이 있나요?
A.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슬람 세력이 하자르 일대에 영향력을 넓혀가면서 유대교를 믿는 하자르와의 관계가 냉각되고 교역 네트워크가 재편된 것은 사실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하자르의 이슬람화가 진행되자 비잔티움이 상업적으로 고립될 것을 우려해 루스와의 협력으로 전환한 것도 하자르 고립에 한몫했습니다.
Q5. 하자르 이후 이 지역에서 유사한 역할을 한 나라가 있나요?
A. 하자르가 차지했던 캅카스와 흑해·카스피해 사이의 완충 역할은 이후 어느 한 세력이 온전히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페체네그, 쿠만이 스텝 지역을 지배했고, 13세기에는 몽골의 킵차크 칸국이 이 일대를 장악했습니다. 하자르처럼 이슬람·기독교 세계 사이에서 독립적인 완충 역할을 한 세력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